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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오래된 거리 셩완(上環)에는 지금도 샥스핀이나 제비집, 녹용같은 물건을 거래하는 약재상과 건어물가게가 많다. 예전 화인무역상들이 남북의 물건을 교역하던 ‘남박홍/난베이항(南北行)’의 흔적이다. 여기서 북은 광둥성 북쪽의 중국대륙 전체를 의미하고, 남은 동남아시아, 그 중에서도 싱가폴과 말레이지아, 인도네시아 등을 칭하는 남쪽바다 ‘난양(南洋)’ 그리고 서양을 뜻한다. 중국에서 흔히 말하는 남방과 북방은 대륙을 가로지르는 장강이나 친링(秦嶺)/화이허(淮河)를 경계로 한다. 하지만 스스로를 “진짜 남쪽사람”으로 여기는 이들의 ‘남방해양중국’은 그런 것이 아니라 푸졘, 광둥, 광시, 하이난, 타이완의 항구들을 점으로 이으며 남진하고 서진하는 광대무변한 세계이다.

올해 5회째를 맞는 중국 신예작가들의 등용문 ‘이상국(理想國)문학상’은 광둥출신 80허우 여성 작가 린자오(林棹)에게 돌아갔다. 그의 두 번째 장편소설 <조석도(潮汐圖)>의 주인공은 19세기 중반 광저우, 마카우, 런던에 살았던 허구적 존재 ‘거인개구리(巨蛙)’이다. 돼지만큼 큰 이 개구리(蛙) 혹은 두꺼비(蟾蜍, 蛤蟆)는 삼켜 먹는 방식으로 사물을 인지하고 사람과도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영물이다. 중국 남방원주민의 후예인 탄카(tanka 蜑民)라 불리는 소수민족, 주강(珠江)의 보트피플 무녀 카이가제(契家姐), 스코틀랜드에서 온 동인도공사 간부이자 박물학자 H, 탈출한 혼혈흑인노예 디에고, 은퇴한 노교수에게 차례로 양육된다. 이 과정에서 만난 이야기꾼들과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세상의 온갖 신기한 것들을 보고 듣는다.

이 책은 문단의 높은 평가에도 불구하고 시대를 넘나드는 다양한 방언의 혼용과 수다스럽고 번잡한 서사의 문턱이 높은 탓에 완독을 위해 대단한 인내심이 필요하다. 적지 않은 평론가와 열성독자들이 한마디 보태기 위해 최소 세번을 넘겨봤다고 고백한다. “작가는 독자들을 이토록 심란하게 만들면서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일까?” 누군가는 책의 말미에 언급되는 인류세와 런던으로 추정되는 제국의 수도가 팬데믹으로 텅비게 된 상황을 떠올리며 인간중심주의에 대한 비판이라고 풀이하고 싶어한다. 작가도 인터뷰에서 모든 것에 영혼이 깃들어 있다는 ‘만물유령(萬物有靈)’이라는 애니미즘/샤머니즘적 키워드를 제시한다. 또 다른 이는 아편전쟁을 전후한 19세기의 식민사, 해양사를 떠올리며 후기식민주의적 시각을 강조하려 한다. 초반에는 성별이 분명치 않던 개구리가 자신이 암컷임을 자각하면서 배란하는 장면을 통해 (하지만 이 알들은 부화하지 못하는 불임의 상태이기도 하다) “여성의 경험”에 초점을 맞추는 이들도 있다. 소설의 도입부부터 자신이 허구의 존재일뿐이라고 직설적으로 고백하고 (화자는 자신이 1981년 광둥성 션전에서 태어났고 말한다. 84년 션전 출생인 작가 자신을 암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작중에서 반복적으로 이 점을 드러내는 것에 주목하는 사람들도 있다. 문학과 소설이라는 장르의 본질인 허구적 서사와 그 주역인 이야기꾼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 것으로 보는 해석이다.

상하이출신으로 홍콩의 링난(嶺南)대학에서 중국근현대문학사를 가르치는 쉬즈둥(許子東) 교수는 물과 뭍을 오가며 사는 양서류인 이 개구리의 출생과 관련한 짧은 일화에 주목한다. 작가가 일부러 이야기의 숲속 한구석에 감춰놓은 것처럼 사소하게 들려서 독자들이 놓치기 쉬운 부분이다. 그는 이 개구리가 ‘동방의 근대’를 은유한다고 해석한다. 특히 광둥의 주강유역이라는 물기로 축축한 환경으로 묘사되는 땅과 문화를 품고 있는 중국인 어머니 그리고 서양인 아버지와 그가 가지고 온 가치관의 충돌속에 태어난 ‘귀태(鬼胎)’라는 것이다. 중국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중국됨(中國性)’에 그토록 집착하지만, 현대 중국인들의 의식을 압도적으로 지배하는 것은 ‘GDP제일주의’라는 서구적 가치이다. 홍콩과 마카우가 바로 이 역사를 물리적으로 상징하는 지역들이다.

홍콩 문단과 학술계에 대한 쉬즈둥의 평가는 그래서 더욱 ‘시니컬’하다. 그는 두가지 문제점을 지적한다. 홍콩문단은 지나치게 “홍콩이라는 지역성과 로컬 창작”에 집착한다고 한다. 그래서 그들이야말로 중국의 5.4운동정신을 가장 잘 계승하고 있다고 비꼰다. 대륙의 문단이 5.4운동을 중국문학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삼는 한편 이 당시의 문학을 “중화민족의 부흥”이라는 거대한 목표에 봉사하는 도구로 삼는 경향을 보여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홍콩학계에서는 오로지 영어담론만이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탓에, 대륙뿐 아니라 타이완에서 생산된 중국어 지식조차도 경시되고 비주류로 취급당한다고 한다. 그에 따르면 이렇게 모순적이고 이원론적인 상황에 놓여있는 홍콩의 문학계가 중국대륙과의 통합을 강요받는 정치적 상황하에서 스스로 새롭고 통합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과제일 수 밖에 없다.

기실 중국인들이 서구사회를 만나는 소역사들은 이 소설의 배경보다도 100년쯤 이른 18세기 건륭제시기에 많이 일어나고 있었다. 홍콩시티대학의 미시사 연구자 청메이바오(程美寶)는 광둥지역의 근대역사와 문화를 오랜 기간 연구해왔다. 그는 옥스포드에서의 박사과정을 마무리하던 중에 대영제국 도서관에서 발견한 중국인들의 서신을 발견하고 그 작자들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이 편지들은 영국의 왕립학회로 부쳐진 것들이다. 황아동(黃遏東)이라 불리는 중국인 소년이 그가 하인으로서 수행하던 (당시 청의 법률에 의하면 외국인이 중국인을 하인으로 부리는 것은 불법이었다.) 동인도회사의 간부 블레이크선장을 따라 영국으로 건너간다. 그곳에 다년간 머물며 블레이크를 보필하는 가운데 영국의 지식인, 귀족들과 교류한다. 그는 광둥과 주강지역의 식물들을 포함한 다양한 지식을 영국사람들에게 전하고 기록으로도 남겼다. 그는 광저우로 돌아와 영국상인들과의 무역업에 종사하는데, 이 편지는 그 때 영국으로 보내어진 것이다. 영국에서 소년의 초상화도 발견한 청교수는 중국측 기록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은 이 인물에 대한 정보를 추적해서 퍼즐처럼 짜맞춘다. 여기에 당시 외국인 상인과 선원들이 중국에서 어떻게 현지인들과 협업을 했는지, 현지인들이 어떻게 실전 영어를 습득했는지와 같은 다른 기록을 더해, 2021년에 한권의 책으로 펴냈다. 역사인류학서로 분류되는 <황둥을 조우하다(遇見黃東)>에는 <조석도>에 묘사된 19세기의 서구와 중국사회의 교역과 교류활동들이 이미 18세기부터 밑자락을 깔아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림2: 영국에 남아 있는 소년 황둥의 초상화, 유화

올해 문학상의 심사위원장을 맡은 하버드의 중국문학사 연구자 왕더웨이(David Der-wei WANG, 王德威) 교수는 일찍부터 그의 <중국현대문학사>에서 화어(華語 Sinophone), 마화(馬華 말레이싱가폴화교), 남방문학에 주목해왔다. 대륙의 고전문학에 집착하는 중국내의 수많은 중국문학사 연구자들과 달리 대륙을 넘어서는 시야를 갖추게 된 것은 그가 “남방의 남방, 타이완 출신”이라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그는 ‘남방’이 고정된 지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 지역과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관계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안에서 폭넓게 정의될 수 있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남방이라는 개념은 자원, 생태, 바다와 연관된 상상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고 제1세계에 대응하는 제3세계의 “글로벌 사우스(Global South)”로 해석될 수도 있다. “주변과 중심”을 나누어 차별하고 착취하는 세계체제에 대한 도전의 영역인 동시에 국민국가의 경계를 넘어 함께 존재하고 생활하는 새로운 공민의식의 요람이 될 수도 있다. 이는 인위적 이념성이 강하고 이미 계급과 신분의식을 내재한 서구사회 중산층의 시민의식과는 다른 시도로 읽힐 수 있다.

“중화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하나의 맥락으로 꿰어 답하고 싶어하는 베이징이나 상하이의 주류 지식인들에게 이는 대륙남북의 농경과 유목문명의 조합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다. 중화의 심상지도에서 “남방의 남방”은 충분히 교화되지 못한 남만(南蠻)의 땅일 뿐이다. “정화의 대항해”는 삶의 필요와는 무관한 정치적 해프닝일 뿐이라 왕조의 정사에는 민간과 상인, 혹은 해적들이 만든 ‘해양중화’의 역사가 존재하지 않는다. 명말청초 다국적출신 해양세력을 이끌며 ‘남방’의 바다를 제패하고 끝내 타이완을 반청복명의 근거지로 삼았던 정성공의 어머니가 일본인이었다는 사실을 아는 중국인들도 매우 적다. 정성공의 후예들은 청말 광둥에 새로운 해양세력을 만들었는데 이중 가장 규모가 큰 홍기방(紅旗幫)을 이끌던 정이(鄭一)와 그의 후계자인 장바오자이(張保仔)는 아편전쟁직전까지 서구상인들과 세력다툼을 벌인다. 이 해적들의 실질적 우두머리가 심지어 이 두 남자의 연인이었던 탄카출신 여성 정이사오(鄭一嫂)였다는 사실은 중국의 역사에서도 철저히 잊혀졌다. 홍콩 TVB의 드라마 시리즈에 등장해서 다시 알려지고, 헐리우드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시리즈에 칭여사(Mistress CHING)라는 캐릭터로 전설처럼 남아 있는 수준이다. 그러니 타이완과 홍콩이 “온전히 중화의 품으로 복속되지 못하는 것”에 대해 중국인들은 남탓만 할 것이 아니다. 그들이 “서구와 일본의 식민지역사관과 서구중심주의 담론에 경도돼 있는 것”이 하나의 이유일 수는 있지만, 또다른 이유는 당국가의 관리 대상인 ‘중화사상’과 그 역사관의 포용성과 확장성에 한계가 명확하기 때문이다.

그림3: <캐러비안의 해적 3: 세상의 끝>에는 광둥의 전설적인 여성해적 두목 정이사오(鄭一嫂, 정이의 부인이라는 의미)에 기반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녀는 홍기방의 두목인 정이(鄭一)의 부인이었으나 정이의 사망후 실질적인 리더가 되고, 정이의 심복이었던 장바오자이(張保仔)와 다시 결혼한다. 정이는 동성연애자였고 장바오자이를 연인으로 삼았기 때문에, 세 사람은 삼각관계였다고 보는 설도 있다. 장바오자이와 정이사오는 나중에 조정에 투항하여 청의 수군으로 활약한다. 순전히 우연이겠지만 장바오자이가 역시 고대 한중일의 바다를 지배했던 신라의 해상영웅 장보고(張保皐)와 이름이 거의 유사한 것도 재미있는 역사적 사실이다.

화어권을 넘나드는 홍콩의 문화평론가 량원다오(梁文道)는 <조석도>에 각별한 애착을 보인다. 국민국가가 형성되기전 해상실크로드를 오가던 다양한 인종, 그들이 사용한 언어와 방언들, 다기한 생활습관을 가진 상인과 이민노동자들이 만들어간 남방해양중국의 풍토, 문화와 역사가 유려한 문장으로 세밀하게 묘사돼 있기 때문이다. 베네딕트 앤더슨이 설명한 것처럼, 동남아시아의 화인들은 원래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들이 사용하던 지역 방언도 출신지에 따라 달라서 상호 의사소통이 쉽지 않았다. 이민정착지를 일구는 과정에서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뭉쳐 소세력을 이루고 서로간에 계투(械鬥)라 불리는 치열한 폭력 투쟁을 벌였다. 훗날 화상재벌이 거대한 부를 일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동포인 중국인 이민노동자들에 대한 착취와, 그들이 고단한 생활과 향수를 잊기 위해 찾은 아편과 매음굴을 운영하며 다시 한번 짜낸 고혈이 그 기반이 되었다고 한다.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이후 이들이 대륙으로 귀환하여 동남연안의 수출중심 제조업경제를 이끌며 지금의 풍요를 만들어 낸 중국경제신화의 선봉에 섰다. 그 100년전에도 화상들은 “모국으로 돌아와 학교와 병원을 세우는 등의 공적에 힘입어 근대민족국가 만들기의 영웅”으로 칭송되었다. 그런데 이들의 진짜 동기는 지금 상상되고 있는 애국심보다는 기독교 선교에 대한 열정과 애향심이 더 컸다고 한다.

린자오 문장의 또다른 미덕은 난해한 후기식민주의 이론을 완전히 소화한후에 다시 젠체함 없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화법으로 풀어서 설명하는 것이다. 백인 지식인 H는 자신이 주강의 갈대밭에서 개구리를 발견했다고 주장하지만, 개구리는 자기가 먼저 H를 발견하고, 스스로 그의 그물속으로 뛰어들어갔다고 설명한다. 개구리에게 원래 세상은 우리와 같은 것이고, 세상을 이해하고 되감아 삼켜보기 위해서 그는 그 안을 탐험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다. 개구리는 H가 죽은 후 범선 ‘세계호’에 승선하여 긴 항해 끝에 제국의 수도 런던에 도착한다. 런던의 시민들이 팬데믹 기침병을 피해 모두 굴속으로 도망치고, 긴 여정을 함께했던 사육사 디에고가 죽고, 동물원 관리자들조차 사라졌을 때, 그는 자신의 힘으로 우리 밖으로 걸어나와 생전 처음보는 새하얀 눈을 경험한다.

량원다오에 따르면 삼부로 나뉘어진 이 작품은 장면의 진행에 따라 세단계의 언어로 정교하게 구성된다. 근현대 중국 남방어계열 방언들 (광둥어, 챠오샨화(潮汕話), 탄카방언, 민난화(閩南話)), 만다린 표준어, 그리고 다양한 외국어를 흡수한 번역투 중국어이다.

이런 방언은 혼종되어 사용할 때 뜻밖의 장소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와 영향을 만들어낸다. 예를 들어 수세미를 뜻하는 표준만다린 쓰과(絲瓜 SiGua)는 광둥어로는 손해나 패배를 뜻하는 ‘syu(輸)’로 들리기 때문에 사용이 기피된다. 그래서 광둥사람들은 행운을 기원하려고 패배대신 승리를 의미하는 싱과(勝瓜 SingGwaa)라는 이름을 따로 붙였다. 중국에서도 특히 남방인, 광둥인들은 이런 “미신적인 언어 습관”을 지금도 많이 유지하고 있다. 광둥/홍콩지역출신의 이민자가 많은 서구사회의 중국인 마켓에서는 이를 ‘쓰과’대신 ‘싱과’로 표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수세미(Sponge gourd)에 익숙하지 않은 현지인들도 그래서 이 채소의 이름을 ‘싱과’라고 인지하고 부르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외국인 혹은 표준어 만다린만을 구사하는 중국인들도 감지하기는 쉽지 않지만 광둥어로 <조석도>의 문장을 낭독하면 특별히 그 어감이 아름답다고 한다. 마치 이백(李白)의 시와 같은 당송(唐宋)의 시가는 만다린보다는 그 시기의 관화(官話 관청과 궁중에서 사용하는 당대의 표준말)에 가깝다고 여겨지는 광둥어로 낭독하는 것이 제맛이라는 주장과 마찬가지이다. “그렇다면 이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언어인가?” 량원다오는 마화문학의 대표작가, 말레이지아 출신 화인 장귀싱(張貴興)이 대륙에는 존재하지 않는 그의 고향 보르네오섬의 열대우림을 묘사하기 위해 만들어낸 새로운 중국어의 생동감에 늘 찬탄한다. 그래서 이 작품은 또다른 전범을 제시하고 중국어의 신지평을 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새로운 언어가 전통의 무게와 애국주의로 “찌그러든 중화”가 아니라 “남방으로 열려있는 제3의 차이나”를 창조한다. 그것은 농경과 유목에 더한 해양의 세계이다. 이념으로 규정된 학술과 전쟁의 정치행위에 더해진 상업적 이윤동기의 탐색이다. 그것은 5천년의 문명전통, 200년의 근대와 사회주의 건설을 이어가는 새로운 역사와 지리의 장이다.

그림4: 소설 <조석도>의 표지, 19세기 주강과 광저우의 풍광이 몽환적으로 그려져 있다.

*중국내에서 남방문학과 마찬가지로 “지역과 역사성”을 통해 주목받는 것은 “둥베이문학”이다. 대표적인 80허우 작가는 솽쉐타오(雙雪濤)인데 이 지면을 통해 그의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다(http://thetomorrow.jinbo.net/archives/14257). 그는 ‘이상국문학상’의 제3회 수상자이기도 하다(https://baike.baidu.com/item/%E5%AE%9D%E7%8F%80%E7%90%86%E6%83%B3%E5%9B%BD%E6%96%87%E5%AD%A6%E5%A5%96/22492910).둥베이문학은 90년대에 벌어진 “사회주의 중국”과 “자본주의 중국”의 세대교체를 상징하는 혼돈과 애상의 정서가 풍부해서 독자들을 더욱 매료시킨다. 동시에 남방과는 다른 역사적 의미로 중국 주류사회에서 잊혀지고 억눌린 변경지대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는 “한중문학교류” 혹은 “한중문화교류”라는 형식과 타이틀로 이뤄지는 이벤트에 거부감을 갖고 있는 편인데, 민간이 주도하는 만남이 굳이 한국과 중국이라는 국민국가의 경계를 지나치게 뚜렷하게 드러낼 필요가 있는지에 의구심을 품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더 큰 또다른 이유는 “중국/중화/차이나 문명이라는 유니버스”가 한국, 한반도의 국가들과 일대일로 대등하게 놓일 때 균형감각을 상실하고 논의가 지나치게 추상적으로 흐를 가능성을 염려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한국에서 중국을 만나려 할 때는, 이런 특정한 지역이나 개념을 게이트웨이로 삼는 것이 훨씬 유효할 뿐더러, 유기적인 관계의 형성에도 유리하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그리고 이해의 폭을 넓히고 싶다면, 일단 이런 방식으로 유기적인 관계의 실마리를 잡은 후에, 거기서 다시 특정한 개념을 타고 관계망을 넓혀가면서 ‘차이나 유니버스’를 탐색해 볼 수도 있다.

김유익

和&同 青春草堂대표. 부지런히 쏘다니며 주로 다른 언어, 문화, 생활방식을 가진 이들을 짝지어주는 중매쟁이 역할을 하며 살고 있는 아저씨. 중국 광저우의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는 오래된 마을에 거주하고 있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공부, 노동, 놀이를 통해서 어울릴 수 있는 작은 공간을 만들어 나가고 싶어한다. 여생의 모토는 “시시한일을 즐겁게 오래하며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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