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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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리에서 한 달을 지낸 후 대만으로 넘어왔다. 4년 반 만에 돌아온 대만. 친구들을 꼬드겨 함께 타이페이에서 차를 빌려 서핑 트립을 떠났다. 대만의 고속도로는 전부 해안도로로 연결되어 있어, 서핑 스팟으로 향하는 경로가 편리하다. 타이둥-켄팅-가오슝에 들러 섬 한 바퀴를 돌았다. 며칠 만에 나라를 돌다니, 한국 못지않게 작구나. 여행의 시작은 이랬다. 대만과 네덜란드 혼혈인 친구가 오랜만에 가족들을 만날 겸 서핑하러 대만에 간다길래, 나도 오랜만에 가볼까 싶어 무작정 비행기 표를 샀다. 그리고 서핑과 여행을 좋아하는 한국인 친구들을 꼬셨다. 그들은 나보다도 표를 먼저 사버렸다. 어쩌다 보니 판이 커졌다. 친구 1234와 친구의 애인까지 합류했다. 하지만 내가 대만에 도착하기 전 몇 명은 여행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나를 포함한 친구들은 전부 비건이고, 차(茶)를 좋아하기에 망설임 없이 대만으로 모였다.

대만은 불교가 지배하는 국가라 채식 인구 비율이 10%에 달하고, 그만큼 채식 식당이 많다. 편의점에 가면 10개도 넘는 종류의 두유가 있다. 대만의 불교 채식은 소식(素食)이라고 말한다.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에서도 상 중에는 소복을 입듯이 소식을 한다. 조선에서 양반들이 삼년상을 치를 때 고기를 먹지 않았다. 본디 소, 밥 식, 몸을 정화하는 깨끗한 식사라는 뜻이다. 발음하면 쑤-쓰-. 한문맹이고 중국어를 못하더라도, 아무 식당에 들어가 쑤쓰!를 외치면 직원이 채식 메뉴를 친절히 알려주신다.

흔한 대만식 아침 식사 중 하나로 도우장(豆漿)이 있다. 바게트처럼 길쭉한 빵을 신선한 두유에 찍어 먹는다. 콩으로 만든 두유와 땅콩, 쌀, 귀리 등 다양한 식물성 밀크를 함께 판매한다. 비건으로 살기 참 좋은 나라다. 감동스러운 아침 식사를 하며 친구가 말했다. “아침으로 두유를 마시니 사람들이 이렇게 젠(禪)할 수밖에 없지.” 정말이지 내가 방문해본 나라 중 가장 친절한 곳이 바로 대만이다. 도로에서 운전할 때면 누구 하나 경적을 울리지 않고 평화롭게 운전한다. 6년 전 처음 홀로 대만 땅을 밟았을 때, 서핑 왕초보가 에티켓에 대한 개념도 없이 실수로 남의 파도를 망쳐버려도 모두 “메이꽌시~”라며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자칫하면 보드가 부서지거나 서퍼가 다칠 수도 있는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기에, 보통 화를 내거나 예민해지기 마련인데. 대만의 서핑 문화를 통해서 친절함이 몸에 밴 사람들이라는 게 한 눈에 보인다. 파도도 좋고, 음식도 맛있고, 물가도 저렴하고, 한국과 가깝고, 차 문화가 번성한 나라인데 사람들마저 좋다니.

그러다 발리에 빠져 한동안 잊고 지내다 친구들과 함께 버블티국을 여행하니 감회가 새롭다. 주 목적은 서핑이었던 지라, 처음 가보는 타이둥 지역에서는 친구가 추천해준 서핑 호스텔에 묵었다. 우리 모두 여행 중 호스텔은 절대 피하는 편이지만, 낯선 지역에서 서핑 정보를 얻고 네트워킹하기 위해 서프 호스텔을 선택했다. 도미토리 숙박이 익숙하지 않은데, 아무 생각 없이 왔다가 냄새나고 구린 여남 혼성 방에서 불편한 이틀을 지냈다. 심지어 시기를 잘못 맞춰 파도도 별로라 아쉬움이 컸다. 그래도 사랑하는 친구들과 아름다운 대만의 풍경을 감상하며 로드트립을 할 수 있기에 그저 좋았다. 그리고 켄팅으로 넘어가 서핑 호스텔에서 묵었다. 다행스레 깨끗한 신축 건물이고, 방에 빛도 잘 들고, 우리끼리 한방을 쓸 수 있어 편안히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켄팅의 거센 바람과 조류를 뚫고 파도를 탄 뒤, 가오슝으로 향했다. 타이페이로 돌아가기 전, 어바니즘과 자연을 함께 누릴 수 있는 항구 도시 가오슝. 이전에 홀로 자주 왔던, 세상 친절하고 정 많은 사장님이 운영하는 서핑샵에 들렀다. 파도와 가까운 서핑샵에 딸린 도미토리를 예약했다. 도착해서 보니 이 숙소는 최악이었다. 벽지와 페인트가 뜯어지고, 곰팡이가 가득하고 너무 습해서 숨도 쉬기 어려울 정도였다. 저렴한 가격에 겸손한 방이리라 아무런 기대도 없이 오긴 했지만, 다들 충격에 급히 새로운 숙소를 알아보았다. 숙소의 컨디션이 최상이 아니기에 사장님도 그런 우리를 이해해 주셨다. 대만의 큰 휴가철이라 예약 가능한 숙소가 거의 없었다. 하루만 견디고 타이페이로 돌아가 푹 쉬자며 합의를 본 뒤 방을 환기했다. 침대 틀이 느껴지는 얇은 매트리스 위에 누워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즉흥적으로 여행할 수 있는 나이는 지났구나. 나를 믿고 따라왔지만 큰 불평 없이 잘 적응하는 친구들에게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이 컸다. 특히나 숙박은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좋은 곳을 찾기 어려운데. 언제 어디서나 누울 곳만 있다면 잘만 씻고 잤던 스무살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큰 공백이 느껴졌다.

젊음의 패기였을까? 물론 지금도 한창 젊은 이십대이지만. 지옥 같은 집을 벗어날 수만 있다면 어디든 훌쩍 떠났던 시절. 그리고 서울 해방촌에 터를 잡아 애인과 동거견과 함께 살림집을 꾸려 ‘돌아가고 싶은 집’이 있는 오늘. 지난 수년간 해외에서 혼자 잘도 지냈는데, 나를 기다리는 가족이 있으니 갑자기 집이 너무도 그리웠다. 나의 색과 향이 묻어나는 물건들을 쌓고 배치해 짜인 나의 공간. 지금 집에 산 지도 벌써 2년이 지났다. 어쩌면 처음 가져보는 나의 집. 미적인 것에 있어 나의 선택을 전적으로 신뢰해주는 짝꿍 덕에, 나의 몸과 정신이 긴장을 풀고 나태해 질 수 있는 사원으로 만들었다. 매일 향을 피우고, 공간을 쓸고 닦고 정리하며 나를 정화하는 사원.

옛날의 나는 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지구를 유랑하며 목적지 없는 도피와 방황을 행했고, 내 몸 속에 한 땀 한 땀 사원을 지었다. 내 몸이 사원이 된들 결국 나는 언제든 돌아갈 수 있는 보금자리가 필요했다. 단숨에 깊은 회상에 빠져 공간의 중요성을 성찰했다. 하지만 좋은 공간에 있어도 나의 사원, 신체가 온전하지 못하다면 아름다운 곳도 황폐해지기 마련이다. 지금 느끼는 이 불편한 감정을 내게 보상해주듯 남은 며칠을 잘 보내자. 내일은 공원을 걷고 아름다운 사찰에 가서 기도를 올려야지, 잠들기 전 향을 피우고 냄새나고 꿉꿉한 이불을 덮었다.

편지지

카메라를 들고 지구를 유랑하는 낭만적 유목민. 네트워크 안팎에서 이미지와 신체로 연결되는 작업하는 사람. 기술을 경유해 생명의 공통 언어를 모색하는 미학적 수행자. 종의 경계가 허물어진 생태적 관계망을 상상하며, 더럽고 아름다운 것들을 채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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