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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이른 무병장수 프로젝트

자네는 여기 왜 왔는가? 통유리가 한 쪽 벽을 메운 소강당은 신발 벗은 나의 전신을 환히 비췄다, 양 옆으로 난 창문으로는 해가 져서 밖이 보이지 않는 상황, 나는 감기에 걸린 몽롱한 상태로 무언가 어긋난 대답을 하였다. ‘제가 사는 구에서 문화바우처 사업을 하는데, 그걸로 제가 지원을 받아서 등록하게 되었습니다.’ 나무칼을 지팡이처럼 짚고 앉은 선생님은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듯 했다. 대화는 흐지부지 되었고 나는 유리로 비친 다른 ‘선배’ 수강생들을 둘러본다. 팔이 곡선을 그리고 다리가 굽었다 펴졌다. 갑자기 어깨가 흐물흐물 떨기도 하는데, 선생님은 돌아다니면서 한 명 혹은 한 무리씩 자세를 바로잡는다. 

정신이 혼탁한 나머지 ‘금전적인 이유’를 대긴 했지만, 그렇다고 선생님에게서 흘러나오는 ‘동양적인’ 이유로 이 ‘태극권’ 수업에 등록한 것은 아니다. 선생님은 기본 자세를 취하는 나의 팔을 번쩍 들고는 ‘젊은데 손발이 차면 안 되는데···’하고 혀를 쯧 찬다. 수련을 오래하면 체질이 바뀔 수 있을 거라는 호언을 더하며. 이번 분기에 같이 입문하는 중년의 ‘동기’ 두 분은 선생님이 쉬러 올 때마다 건강에 대해서 묻는다. 선생님은 약을 먹거나 수술을 하는 것은 일시적인 해소책일 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태극권은 곧 몸을 재활시키는 운동이라고 했다. 그 말이 꼭 ‘동양철학’ 강의에서 접한 유기론적인 신체관을 떠올리게 했다. 

서양 문물과 세계관에 더 익숙한 나로서는 이 모든 풍경이 신선했다. 태극권을 배우러 여기까지 온 이유? 나는 신경과학 책을 읽고 설득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나는 어떤 행동을 실천할 충분한 이유가 쌓이면 그것대로 자연스럽게 움직이는 편이다. 이전 서평에서 다룬 주제인 ‘단식’도 나에겐 생소한 행동이었지만 책을 읽고나서 (자체)실험에 뛰어들었다. 이번 서평의 대상인 『움직임의 뇌과학』은 우리가 많이 그리고 자주 움직여야 하는 신경학적 이유를 제시하고, 여러 유형의 운동이 지닌 각각의 이점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서 태극권은 여러 챕터에 걸쳐 두루두루 언급되어 다양한 장점이 있음이 보였다. 그렇다면 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살아남기 위한 머리쓰기

캐럴라인 윌리엄스의 위 책은 성게의 예시로 시작되는데, 그 사례가 강렬하고 흥미롭다. 성게는 사실 유년 시기에는 뇌를 보유하지만, 주거지를 정착하고 성체가 되면서 뇌를 스스로 소화해버린다고 한다. 이것은 한 생물이 보여주는 자연의 신비이자 종으로서의 최적의 전략이다. 그 이유는 뇌가 (인간의 경우) 몸 전체 부피의 2%를 차지하면서도 신체 에너지의 20%를 소모하는, 사치스러운 기관이기 때문이다. 지능은 ‘문제해결을 위한 능력’[1]이라는 정의를 생각해볼 때, 성게는 생존과 번식이라는 생명체의 최대 난제를 중앙신경계를 없앰으로써 해결한 것이다. 뇌는 이동을 위해 잠시 거들 뿐, 똑똑하게 살아남기 위한 필수요소는 아닌 셈이다. 

뇌가 복잡하게 진화하는 과정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동력은 움직임이었다. 시간을 당겨서 ‘영장류’가 살던 숲으로 시점을 옮기면, 그들이 ‘브레키에이션’을 하는 동작에서 고전하는 모습이 보일 것이다. 브레키에이션이란 나무가지를 손으로 올려다 잡고 이동하는 동작을 뜻하는데, 이것은 고도로 복잡한 동작이라고 한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소뇌와 대뇌피질 전측부가 연결되며 강화되었고 그 결과로 움직임과 사고와 감정이 연속적으로 결합하였다. 또한 인류는 ‘호모 에렉투스’(직립하는 사람)로서 수렵과 채집 생활을 하였고 이것과 더불어 인간들 간 이뤄진 협력은 그들이 풀어야만 했던 복잡한 문제가 되었다. 그래서 뇌 용량은 더 커졌다.  

이같은 간략한 뇌의 역사가 말해주는 것은 뇌가 차지하는 계보이자 위상이다. 뇌는 ‘싱크탱크’(특정 조직의 ‘머리’에 비유되는 연구집단)인데 몸이라는 ‘액티비스트’(운동가 혹은 실천가)의 요청에 의해서 도입되었다. 그 순서를 분명히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는 오늘날에도 뇌와 다른 신체 부분 사이에 지속되는 협력적 관계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뇌와 나머지 몸은 ‘삶’의 양 측면인 ‘앎’과 ‘함’을 각각 집중적으로 도맡고 있다. 이는 ‘스스로를 조직하는 개체’인 생물이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 발휘하는 역동성의 두 일면일 뿐이다. 자기를 보존하는 ‘삶’을 위해서는 외부와 접촉하여 끊임없이 내부를 정의해야 하는데, 이것이 곧 ‘앎’이라는 ‘함’이었던 것이다.[2] 

 

통속의 뇌는 신발이다 

생명체는 살아남기 위해 분투하는 과정에서 복잡성을 더해갔다. 세포에서 다세포로, 개체에서 사회공동체가 확대되는 과정에서 뇌가 차지하는 위치는 세포들 ‘사이’에 있다. 신경계는 서로 다른 역할을 하는 세포를 이어주는 도구로 등장하였고 특히 감각세포와 운동세포를 매개했다. 원숭이가 나무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서는 촉각과 시각 그리고 상체의 근육이 협동해야 하며 이 과정에서 소뇌와 대뇌가 연결되었음은 이미 앞에서 언급되었다. 사람의 춤도, 결국은 소리 자극에 반응하는 일련의 몸 동작이다. 뇌는 그 연쇄반응을 통해 생존을 위한 이점[3]을 얻기 때문에 청각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영역을 연결하여 특화된 경로를 만들어놓았다. 

그렇게 따지자면, 뇌는 우리가 길 위에서 춤추고 거친 바닥에서 달리기 위해 신는 ‘신발’이다! ‘매체’에 대한 유명한 정의에서, 도구가 인간의 확장이라고 설명하는 것과 같이, 인간은 더 복잡하고 더 적합한 동작을 위해서 뇌를 발달시킨 것이다. 다른 맥락에서 뇌를 발과 연결할 수도 있다. 신체의 다른 부분을 조율하고 때로는 통제하는 ‘육체적인’ 일은 뇌가 온몸으로부터 하달 받은 역할이라고 치자. 하지만 뇌가 커지면서 발생한 ‘정신적인 영역’에 있어서는 뇌만이 독보적인 권위를 가지는 것이 아닐까? 예를 들어 ‘내면의 활동’이라고 여겨지는 자기의식을 생각해보자. ‘자기를 생각하는 일’은 발이나 장은 할 수 없는 일 아닌가?[4]

‘나는 통 속의 뇌가 아니다.’ 보존 용액 속에 푹 잠겨서 전기신호를 주입 받으며 스스로를 그렇게 착각하는 뇌를 있다고 하자. 이것은 철학자 힐러리 퍼트넘이 제시한 사고실험의 내용이기도 하다. 이런 상상은 뇌가 단독적으로 혹은 독립적으로 정신적인 기능을 수행할 것이라는 전제에 기초한다. 하지만 최근에 대두된 ‘체화된 인지’ 견해가 주장하는 바는 다르다. 뇌는 다른 신체 부분으로부터 ‘내부수용감각’을 받아들이고 이를 토대로 ‘고유수용감각’을 형성한다. 즉, ‘현재의 몸 상태가 어떠한지’에 관한 정보를 토대로 ‘나는 누구인가’라는 의식이 형성되는 것이다. 

 

나의 동력은 운동이다

운동은 몸을 움직여서 세계와 교류하는 방식을 능동적으로 바꾸는 일이다. 앞서 생명체는 자기조직체로서 자기자신과 외부세계를 구분하는 역동적인 체계라고 하였다. 이때 ‘행동’은 안과 밖을 다시 배치하는 생물의 주도적인 전략이다. 자의식을 가진 인간은 이에 더해 운동을 함으로써 자신감과 자기의식을 구성하는 긍정적인 데이터를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특정 기억 혹은 목표 등을 답으로 제시하는 것은 정신적인 영역의 ‘동기’를 가리키는 것이다. 한편 ‘나의 동력은 운동’이라는 답변은 역설적이라고 느껴질 수도 있지만 새로운 신경과학의 관점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대답이다. 

이론적인 부분을 해설하는 것은 이쯤에서 마치고 이제부터는 운동이 가져다주는 구체적인 장점들을 전달하고자 한다. 먼저 ‘체화된 인지’를 대표적으로 뒷받침할 수 있는 ‘달리기’와 ‘자전거 타기’이다. 이 두 유산소 운동의 널리 알려진 건강 상의 효과와 더불어, 이들의 앞으로 나아가는 동작은 우리가 시간의 흐름 속에서 진보하고 있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고 한다. 또한 근골격계를 강화하는 운동은 견고한 몸을 갖게 하여, 일상에서 마주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배경 감정(background feeling)’으로 제공한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유연성 운동의 ‘멋짐’으로는 ‘유체 네트워크’의 일부인 근막을 자극하여 염증 반응을 진정시키는 것이 있다. 

이처럼 운동은 유형별로 인간에게 이로움을 주고 종목별로 다양한 이점으로 인생의 질을 향상시킨다. 그러므로 일단은 어떤 운동이든 꾸준히 하는 것이 좋고, 가능하면 여러가지를 시도해보고 즐기면 좋을 것이다. 나는 성년이 되고 나서 어렸을 때에 비해서는 훨씬 동적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자부심이 생겼다. 그러나 애플워치를 구입하고 ‘운동’ 상태를 기록하러 들어갔을 때, ‘ㄱ’부터 ‘ㅎ’까지 오름차순으로 셀 수 없이 많은 종류들이 있다는 것에 깜짝 놀랐다. 자부심은 다시 ‘나의 세계가 아직 조그맣고 정적이다’는 아쉬움으로 바뀌었고 다른 한편 앞으로 도전하며 새로 누릴 수 있는 것이 많다는 것을 알고 앞으로의 인생에 기대가 생겼다. 

아래 나와있는 깨달음에 한 줄이 더해질 때마다 내 삶은 더 풍요로워질 것이다. 

 

선 채로 일하면서 머리속이 꽉 막히지 않을 수 있음을, 

근력운동을 하며 나도 몸에 힘주고 단단하게 살 수 있음을, 

요가를 하며 호흡을 따라 시간을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음을,

인터벌 러닝하며 활력을 싱싱하게 뿜어낼 수 있음을,

등산하며 자연에서 힐링하고 일상을 리프레시할 수 있음을.

훌라를 추며 코어에 힘 주며 곧게 바로 설 수 있음을

또 무엇을 더 할 수 있을까. 무엇을 더 알 수 있을까.

 

태극권을 배우러 간 세 번째 날에도 나는 버벅인다. 단 몇 개의 동작으로 구성된 ‘식’ 2개를 방금 보고 따라했는데도 불구하고, 다시 해보려니 아무것도 생각나지 않는다. ‘브레키에이션’을 처음 시도하는 원숭이가 된 것 같다. 그때 선생님이 다 이해한다는 듯이 웃으면서 다가와서 말씀하신다. 처음 하는 사람들은 다 그렇다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익혀서 움직여야 한다고. 태극권을 하면서 나는 내가 더 활짝 뻗고, 더 깊게 구부리는 것 외에도 삶에 대한 무언가를 또 배울 수 있을 거라고 예감한다. 

 

 

[1] 『라이프 3.0』, 백우진 옮김, 동아시아, 2017. 

[2] ‘자기조직체’의 정의와 ‘앎’과 ‘함’의 밀접한 관계를 더 알고자 한다면, 움베르또 마뚜라나, 프란시스코 바렐라의 『앎의 나무』를 참조할 것. 혹은 위 책으로 작성한 필자의 다음 서평을 참고할 것: [https://ecosophialab.com/%EC%82%B6%EC%9D%80-%ED%95%A8%EA%B3%BC-%EC%95%8E%EC%9D%98-%ED%95%A9-%E3%80%8E%EC%95%8E%EC%9D%98-%EB%82%98%EB%AC%B4%E3%80%8F%EB%A5%BC-%EC%9D%BD%EA%B3%A0/]

[3] 책에서는 ‘리듬’이라는 규칙을 발견하여 상황을 통제하는 심리적인 측면, 사람들 사이에 공통적인 행동을 촉발하는 사회적인 측면 등이 언급된다. 

[4] ‘자기를 생각하는 일’에 발과 장은 일정 부분 관여한다. 발에는 압력을 감지하는 센서가 있어서 서있는 자세 혹은 가볍게 걷는 운동은 뇌에 혈류를 공급한다. 무릎에 가해지는 하중은 ‘오스테오칼신’이라는 호르몬을 방출시켜 기억력과 전반적인 인지능력을 증가시킨다. 또한 장은 지난 『더 커넥션』 서평에서 살펴보았듯이, 세로토닌과 같이 자체적으로 생산한 신호전달물질 및 장내 미생물군에 의한 신호물질을 뇌로 전달한다. 

마카야(배선우)

책읽기를 좋아해서 대학교에 진학한 신분. 전공책보다 소설과 미래학 책으로 다른 세상으로 떠나기를 즐겨하던 학생. 올해 졸업을 앞뒀지만 ‘좋아하는 철학자’는 없고 대학원은 안 갈 예정. 부모님의 주52시간 근무는 그저 존경스러울 뿐, 트렌드에 따라서 프리랜서로 생활하고 싶은 바람. 다행히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일감은 하나 둘 늘어나는 나날. 선한 영향력, 세상으로 뿜어대는 인플루언서가 되고 싶지만 SNS는 하지 않는 모순. 일상 속에서 심신을 가다듬고 내 일을 사랑하면, 큰 꿈은 없지만 지구살림에 보탬이 될까 싶어 살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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