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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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른이 된다는 것
  • 글로벌 금융 위기를 제대로 이해하기
  • 미국의 은행위기에서 중국이 얻는 반사이익
  • 커뮤니티 변천사: 1.0부터 3.0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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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해(人海)전술 : 데이터의 바다 

2018년 글로벌 R&D 비중에서 미국은 28%, 중국은 26%를 차지했다. 훗날 역사가들은 미국이 연구개발과 혁신을 주도했던 마지막 해로 기록할지도 모른다. 2019년 중-미 간 역전이 일어났기 때문이다. 세계 R&D의 선도국으로 중국이 등장한 것이다. 아편전쟁 이래 200년, 21세기의 대반전과 대격변을 예고하는 선행 지표라고 하겠다.

그리고 바로 다음 해에 코로나 팬데믹이 발생한다. 한-중 수교 30년을 맞이하는 2022년 현재까지 3년 가까이 양국 사이에 인적 교류가 거의 없다시피 한 예외적인 경험을 하고 있다. 그 왕래의 부재 속에서 R&D 선진국 중국은 전속력으로 초가속적으로 디지털 대전환을 이루어 내었다. 포스트-코로나, 뉴노멀을 가장 먼저 가장 널리 달성한 나라로 환골탈태한 것이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중국을 두고 딴소리와 흰소리가 부쩍 더 심해졌다. 현장감의 부재와 현실감각의 상실 속에서 중국의 변화 속도를 좀처럼 따라가지 못하는 인식의 지체 현상이 만연한 것이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에 대한 소식은 들어보았어도, 그 제재 3년 동안의 절치부심 끝에 독자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낸 화웨이의 재기에 대해서는 익숙하지 못하다.

지난 30년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큰 변화를 경험한 나라였고, 이웃나라인 한국은 그 수혜를 가장 많이 받은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1998년 아시아 금융위기와 2008년 세계 금융위기를 거치면서도 공식적인 선진국으로 인정받은 2021년까지 탈냉전기 한국의 성장과 발전의 주요 엔진이 중국 시장에 있었음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30년 중국의 변화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고, 변화의 폭 또한 더더욱 넓고 깊어질 것이다. 데이터야말로 미래의 변화를 추동하는 핵심 자원이기 때문이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3억 5천의 미국보다 월등히 앞서는 데이터를 확보하게 된다. 그래서 미중 간의 기술 패권 경쟁에서 미국이야말로 해외 시장에서 승부를 걸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미국이 서둘러 고색창연한 냉전기의 서방진영을 재규합하는 일에 안달하는 속사정이라고 하겠다. 하지만 유럽에 일본과 한국과 호주와 뉴질랜드를 보태어도 중국 한 나라의 인구에도 비할 바가 못된다.  나아가 더욱 의미심장한 것은 앞으로 인구가 증가하게 될 미래 시장일수록 중국이 선점을 너머 독점에 가까운 지위를 이미 누리고 있다는 점이다.

장차 인구가 가장 많을 나라는 인도이다. 2020년대 어느 즈음에 중국을 추월하여 15억 대국으로 부상할 것이다.  앞으로 인구가 가장 많을 종교는 이슬람이다. 18억을 돌파하고 20억에 이를 것으로 전망된다. 또 앞으로 인구가 많이 증가할 대륙으로는 아프리카가 꼽힌다. 즉 아시아부터 아프리카까지 구대륙과 구세계에서 빅데이터의 바다가 활짝 열리고 있는 것이다. 제2의 대항해 시대, 디지털 대항해 시대가 개막되고 있다고 하겠다.  2030년이 되면 그동안 ‘선진국’으로 이야기되었던 글로벌 북반구와 ‘제3세계’라고 불리었던 글로벌 남반구 간의 총 경제규모마저도 역전될 것으로 예상된다. 세계구조의 터닝 포인트, 세계질서의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후 격차가 벌어지는 속도는 갈수록 가팔라질 것이다. 데이터 테크놀로지야말로 ‘스케일 업’이 중요한 바, 데이터를 생산하는 인구 규모가 압도적이고 그 인구의 연결망 또한 촘촘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산업혁명이 야기한 대분기 이래 동/서의 대반전, 남/북의 대반전, 중심과 주변의 대반전이 기술혁명과 더불어 증폭되는 것이다. 이제야말로 몇몇 강대국(옛 제국주의 국가들)이 주도하는 힘의 논리가 아니라 다수국의 다수결의 논리가 적용되는, 빅데이터의 결정권이 커지는 ‘지구적 민주주의’ 시대로 이행하는 것이다.

즉 미래가 만들어지고 있는 땅은 비서방이다. 그리고 그 비서구에서 형성되고 있는 새로운 인프라, 미래의 디지털 신경망들의 상당수가 중국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미래학자 에이미 웹(Amy Webb)은 그녀의 저서 <빅 나인>에서 2069년이 되면 150개 국가 이상의 네트워크의 중심에 중국이 자리할 것이라 전망한다.  통신과 무역과 금융 등 세계의 모든 길이 (다시) 중국으로 통할 것이라는 예상이다. 나 또한 동의하는 바이지만 시점을 너무 늦게 잡았다고 여긴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 한중수교 60주년이 되는 2052년이면 이미 세계 연결망의 허브로서 테크노-차이나의 굴기가 일단락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우리가 지난 200년 동안 학습했던 자본주의, 사회주의,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과는 전혀 차원이 다른 새로운 문명세계가 펼쳐질 가능성 또한 적지 않다. 공산주의의 몰락과 자본주의의 실패 이후 도래하는 불가피한 미래가 예견되는 것이다. 우리는 이제 우리 인류를 여기까지 오게 했던 바로 그 위대한 근대적인 사상과 철학을 포기해야만 할 것이다. 익숙한 것들과의 급진적인 작별 속에서 만이 미래가 비로소 어렴풋이 열릴 것이기 때문이다. 테크노-차이나의 굴기가 의미심장한 것은 농업문명과 산업문명 이후의 그 새로운 문명이 가장 먼저 자태를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 있다. 자연진화의 에콜로지와 인공진화의 테크놀로지가 창조적으로 결합하는 디지털-생태문명, 테크노-생명문명의 탄생을 예감케 되는 것이다.

 

2. 테콜로지(Techology)

‘제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있다. 지난 50년 세계의 시대정신을 선도해왔던 다보스포럼이 설파하는 새로운 강령이다. 하지만 정확한 말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작금 우리 인류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는 산업혁명의 4번째 단계라고 갈음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오히려 앞으로 400년은 더 지속될 디지털 혁명의 첫 번째 국면, 즉 ‘제1차 디지털혁명’이라고 명명하는 편이 실상에 더 부합할 것이다. 따라서 21세기는 그동안 인류가 경험했던 역사 가운데 가장 창조적인 파괴가 일어날 것이다. 농업문명의 지혜와 산업문명의 지식이 무용해지는 디지털 창세기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응당 지난 백년 인류가 헌신해왔던 자유주의, 민주주의, 자본주의, 사회주의 등 기존의 이념과 가치와 체제도 뿌리로부터 흔들리고 있다. 농업문명의 지식체계인 인문학이나 산업문명의 지식체제인 사회과학으로는 도무지 설명이 되지 않는 신세계가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디지털 자본주의’나 ‘21세기 민주주의’ 등의 작명 또한 진부한 접근 방식이라고 하겠다. 그만큼이나 현재 중국의 진화에 대해서도 기왕의 문사철(문학-역사-철학)이나 정경사(정치-경제-사회)의 틀로 접근해서는 실체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오히려 변화하는 중국을 적확하게 관찰함으로써 새로운 지식 체계를 확립해 가는 편이 더 합리적일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중국을 갈 수는 없었지만 중국에서 진행되는 학술회의는 더 많이 참관할 수 있었다. 디지털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참여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가장 크게 인상을 남긴 웨비나(web seminar)가 중국의 정치 개혁에 대한 논의였다. 중국공산당이 다당제를 허용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다만 다원제를 모색해보는 장이 섰던 것이다. 전인대(전국인민대표대회)를 양원제로 운영해 보자고 한다. 그런데 기존 민주국가의 상/하원 개념이 전혀 아니었다. 인간들의 의회와 AI 의회로 양분하면 어떨까 하는 파격적인 아이디어였다. 인민들을 대의하는 대표들로 구성된 의회와 더불어 인민들의 집합적 데이터가 가리키는 미래의 방향을 대변하는 AI의회를 설치하자는 것이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 AI의회를 하원으로 둘 것인가, 상원으로 삼을 것인가까지 토론이 치열하게 진행되는 장면이었다. 최종적 의사결정권을 인간에게 남기는 것이 옳은 일인지, 아니면 인간들의 협의와 합의에 대한 최종적인 판단을 AI에게 맡기는 것이 더 합리적일지 논쟁했던 것이다. 정녕 인민주권론과 사회계약론은 낡은 이론이 되었다. 디지털 신세계에서 살아갈 인간과 활물 사이의 새로운 약속이 필요한 시점이 된 것이다.

즉 20세기의 자동화가 인간을 근력으로부터 해방시켰다면, 21세기의 자율화는 인간을 지력으로부터 해방시키고 있다.  갈수록 의사결정이라는 고유의 방정식에서 인간만의 영역이 잠식되어 갈 것이다. 정녕 인간들의 욕구가 정치 혁명이 아니라 기술 혁신에 의해서 더욱 잘 충족된다면 어떠해야 할 것인가, 본질적인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그러한 미래사회, 테크노-사회주의의 초입기에 진입해 있는지도 모른다.  이미 구글은 지식과 정보의 가치를 0에 가깝게 수렴시켰다. 우리가 검색을 통하여 실시간으로 향유하고 있는 지식과 정보는 한때 인류의 절대 다수에게 접근조차 가능하지 못했고, 가능하더라도 어마어마한 비용이 필요했던 영역이다. 지식의 공유화, 사회주의화가 진행된 것이다. 스마트폰의 도입 역시도 커뮤니케이션의 비용을 점점 0에 가깝게 떨어뜨리고 있다.  의사소통의 가치를 하락시켜 사회주의화하고 있는 셈이다.

사물인터넷과 결합된 AI 또한 교육에 혁명적인 변화를 야기할 것이다. 이미 미네르바 대학의 성공이 상징하는 바, 수백 년 전통을 자랑하던 명문대학의 명성을 수년 만에 허물어뜨리고 세계 최고의 혁신대학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캠퍼스도 없이 모든 교육을 온라인으로만 진행하는 이 가상의 대학이 미래교육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근미래에는 모든 학생들 개개인에게 최적화된 AI 교수가 저가로 제공될 것이다. 저마다의 능력과 재능과 흥미에 따른 맞춤형 교육 서비스가 보급될 것이다. 주택과 의료, 식량과 에너지, 교통과 교육 등등 인간사 세상만사에서 고품질의 최적화 서비스가 점점 더 낮은 비용으로, 궁극적으로는 무상으로 제공되는 신천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이 테크노-미래에서 그동안 인간이 수행해왔던 거의 모든 노동은 AI 로봇으로 대체될 것임에 틀림이 없다. 농업문명 시대의 노예노동이 폐지되어 갔던 것처럼 산업문명 시대의 임금노동 또한 폐기처분 될 것이다.

바야흐로 농업혁명 이래 1만년, 비로소 거의 모든 인류가 노동에서 해방될 것만 같다. 더 많은 시간을 가족과 운동과 여가에 쓰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초기에는 엔터테인먼트 비즈니스가 절정을 구가할 공산이 높다. 그러나 120세 인생을 계속하여 놀고먹기도 쉽지가 않을 일이다. 궁극적으로는 더욱 원대하고 숭고한 목표를 추구하게 될지 모른다. 오로지 높아지고 오롯이 깊어지는 것만이 지속가능한 삶을 추동하는 내연기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을 돕고, 환경을 보호하고, 어른들을 보살피고, 영적으로 더 성장하는 일의 가치가 더욱 높아져 갈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가치 있는 일들’에 대한 시간의 투입 자체가 데이터를 통하여 자동적으로 인정받아 수입이 되어 되돌아올 수도 있을 것이다.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더더욱 가치 있는 일을 할 수 있는 자원이 자동적으로 확보가 되는 것이다. 이는 마치 과거의 종교인들의 삶에 근접해진다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의 영혼을 어루만지는 일을 하는 것만으로도 지속가능한 삶의 근간이 마련되었던 것이다.

결국 미래는 완전히 자동화된 사회로 진화해갈 것이다. 완전히 자율화된 미래사회는 ‘스스로 그러한’ 새로운 자연에 근접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진정으로 자유로워질 것이다. 마치 물과 공기와 햇빛이 무상으로 주어져 생태계가 번성했던 것처럼, 기술의 열매를 따먹으면서 수렵하고 채집하는 디지털 원시사회에 근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자율로봇으로 만인을 위한 번영이 가능해질 것이며, 글로벌 빈곤은 점차 줄어들어 갈 것이다. 의료부터 교통까지 모든 것의 비용은 낮아져 0으로 수렴되어 갈 것이다. 0과 1의 음양론이 펼쳐내는 디지털 신세계의 마법이라고 하겠다. 살아가는 비용이 거의 필요하지 않는 무상의 세상, 무위의 자연이 펼쳐지는 것이다.  완전히 자동화된 사회에서 의사를 만나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가능해진다. AI 주치의는 병을 치료하는 것도 아니다. 예방 의학이 일반화된다. 각자의 몸에 최적화된 의료 서비스를 실시간으로 무상으로 제공한다. 건강은 달성해야 하는 목표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결과가 된다. 환경 오염을 복원하는 데에도 AI 로봇들이 맹활약할 것이다. 강과 바다와 산 등 지구 곳곳에서 20세기 인류가 만들어낸 온갖 쓰레기들을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날씨에 구애 받지 않고 치우는 AI 로봇 군단의 풍경을 상상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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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멋진 신세계의 미래상에  동의하기 힘들 수 있다. 응당 수긍하기도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토론해볼 가치는 충분하다. 그리고 그런 토론이 가장 활발하게 펼쳐지고 있는 곳이 바로 현재의 중국이다. 정치혁명이 아니라 기술혁신이 추동하는 테크노-사회주의를 향하여 박차를 가하고 있는 실험 국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크놀로지와 결합된 새로운 에콜로지의 탄생은 정치운동의 성과도 아니요, 경제이론의 발전도 아니다. 자연스러운 진화의 소산이며, 불가피한 미래의 도래이다.  22세기의 인류는 테크놀로지와 에콜로지를 분리하여 말하고 생각하지 않을 가능성마저 있다. 오로지 지구 상에는 기술과 결합된 생태계, ‘테콜로지’만이 있을 뿐이다. 정녕 지구 진화사의 새로운 단계, 뉴테라의 뉴노멀로서 테콜로지(Tecology)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3. DIGITAL EAST 

코로나 팬데믹을 계기로 테콜로지를 향해 전력 질주하는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 만큼이나 맞은편 대만의 중화민국 또한 또 다른 차원의 혁신국가를 실험하고 있었다. 세계 최초의 30대 디지털 장관 오드리 탕이 주도하고 있는 ‘버추얼 타이완’의 플랫폼 구축이 그것이다. 정치인의 개입 없이도 시민들의 참여와 AI의 협력으로 최적화된 정책 솔루션을 도출하는 실험을 진행하고 있다. 선출된 지도자의 영향이 없는 직접 민주주의와 디지털 민주주의의 결합으로 이전과는 상이한 참여 정치를 구현하고 있는 것이다. 참여 정치의 이상이 팬덤 정치로 귀결되고 만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기술적으로 극복해 보자는 것이다. 다양한 시민들의 욕구와 요구를 테크놀로지와 데이터를 통하여 추적하고 파악함으로써 실시간 거버넌스의 전범을 세웠다고 하겠다. 이 버추얼 타이완이 구현한 플랫폼을 통하여 시민 교육과 합의 도출이 동시에 가능해지는 민주주의의 진화를 과시한 것이다. 몇 년 주기의 선거로는 도저히 달성될 수 없는 학습과 숙의가 가능함도 입증해 보였다. 이 버추얼 타이완의 시도가 장착되고 정착될수록 오늘날 전 세계 거의 모든 나라에서 오작동하고 있는 대의제 민주주의를 대체해갈 가능성도 적지 않을 것 같다. 국회의원과 각 부처의 장관 등 선출직과 임명직의 상당수도 자동화된 자연스러운 집합적 의사결정을 통하여 능히 대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산업문명의 좌/우로 갈리었던 중국과 대만이 각기 상이한 방식으로 디지털문명을 선도하면서 모색하고 있는 새로운 거버넌스가 흡사한 방향으로 합류하고 있음이 퍽이나 의미심장하다.

실은 좌/우만 합류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동/서도 융합되고 있다. 디지털 문명의 씨앗을 뿌리고 싹을 틔웠던 실리콘밸리의 탄생부터가 동/서 합작의 소산이었다. 68혁명, 서구의 자본주의와 동구의 공산주의에 공히 반기를 든 당시의 전위 세력들이 갈구한 정신적 해방구가 바로 동방이었다. 자연과 자유가 반목하지 않고 상생하는 유토피아를 열망했던 히피들이 무위자연을 설파하는 동방의 세계관을 디지털 기술로 실현해보고자 하는 소망으로 만들어낸 실험구가 바로 오늘날 실리콘밸리의 태동이었던 것이다. 고로 ‘GO WEST’,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미국 서해안으로의 탈주는 속 깊이 신대륙이 구대륙과 접속하는 ‘GO EAST’, 아시아와 가장 가까운 땅으로의 질주이기도 했던 것이다. 현재 실리콘밸리의 주민 중 절반에 달하는 비중이 아시아계인 것 또한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하겠다. 실리콘밸리야말로 동방의 도와 서방의 기와 만나는 동도서기(東道西器)의 요람이자 보루였던 것이다.

그 실리콘밸리의 혁신적인 동/서 문명 통합의 실험이 전면적으로 전방위적으로 전국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장소가 21세기의 중국이다.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실리콘스테이트, 실리콘월드라고 할 수도 있다. 서방이 창조해낸 최첨단의 테크놀로지를 완전히 학습하여 동방의 이상향을 구현하는 동/서합작의 신문명 건설에 매진하고 있는 것이다. 인류는 마침내 디지털 신세계와 접속함으로써 농업문명시대의 1인통치와 산업문명시대의 다수정치를 지나 창업문명시대의 무위자치(無爲自治)의 단계로 이행하고 있다. 일찍이 동방의 현자가 가라사대, 태평성대는 왕이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세상이라고 하셨다. 만인이 주권자가 되어 정치에 과몰입하는 시대야말로 난세였던 것이다. 치세는 만인이 성인(聖人)이 되는 노력을 경주하면서 정작 다스림은 자율적으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경지를 의미한다. 디지털 거버넌스를 통하여 동방의 치도(治道)를 완성해내는 것이다.

진정으로 인류는 협력할 때 가장 강력하고 깨어나고 살아나고 또 효율적이었다. 앞으로 30년, 산업문명의 업보인 기후재난과 기후재앙이 이 행성의 만국과 만인과 만물에 커다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천만다행으로 디지털 혁명이 초가속으로 진행되어 스마트 인프라를 장착할 수 있는 천재일우의 기화가 열리고 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맡겼던 시장의 원리를 투명하게 보이는 데이터에 의해서 경영할 수도 있게 되었다. 이 디지털 혁명과 기후 재난이라는 인류가 경험하지 못한 두 가지 현상의 동시적 진행이 지구와 인류의 장기적 미래를 상상하고 설계할 수 있는 예외적인 시기를 허락해 주고 있는 것이다.

무위자치의 방법론에 이어서 천하위공(天下爲公)의 가치론까지 주목받게 되는 까닭이라고 하겠다. 다시 한번 동방의 현자가 가로사대, 국가 또한 사사로운 것이라 일컬으셨다. 오로지 천하만이 공적인 것이라고 가르치셨다. 그 천하위공의 지구경영을 위하여 우리는 장기적인 플래닝(planning)과 프로그램과 프로젝트를 마련해야 한다. 세대간 협업과 국가간 협치와 종간의 협력까지도 필요할 것이다. 광물과 생물과 인물과 사물과 활물이 하나의 공동체 의식으로 융합하는 테콜로지의 행성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빅뱅(Big Bang)에 버금가는 딥뱅(Deep Bang), 그야말로 21세기는 인류의 진화사에서도 획기적인 이정표가 될 것이다.

인류는 이미 지구 행성을 개조시킬 수 있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다음 백년, 인류의 지구공학 기술은 예술적 정교함에 근접해져 갈 것이다. 다른 백년 , 우리들의 집과 도시 또한 지속가능하고 회복탄력적인 유사-유기체로 진화해 갈 것이다. 지난 200년 해안가를 중심으로 건설된 대도시에서 살아가는 20억이 넘는 사람들이 내륙과 산간으로 옮겨 스마트에코시티에서 살아가는 대이동과 대이주가 전개되어 갈 것이다. 공기 중의 이산화탄소를 포집하는 것은 물론이요, 그 포집된 탄소를 나노 튜브 같은 신소재로 개발하여 미래도시 건설에도 활용해 갈 것이다. 농업과 식량 공급망도 완전히 자동화될 것이며, 공장에서 길렀던 동물들도 완전히 해방되어 갈 것이다. 단백질은 오로지 실험실에서만 조합되어 나올 것이다. 마침내 인간의 생산력과 지구의 생명력이 상충하지 않고 상생하는 미래의 세계를 상상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아니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게 될 것 같다.

테크노-차이나의 향로를 탐구하다 디지털-이스트의 도래를 목도하며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물음표로 시작한 집필을 느낌표로 마무리 짓는다. 저 무궁하고도 무진한 테콜로지의 세기를 두 팔 벌려 한가득 한아름 환영하면서!

 

이병한

20대는 사회과학도였다. 서방을 선망했고, 새로운 이론의 습득에 골몰했다. 30대는 역사학자였다. 동방을 천착하고, 오랜 문명의 유산을 되새겼다. 자연스레 동/서의 회통과 고/금의 융합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소산으로 1000일 『유라시아 견문』을 마무리 짓고 40대를 맞이했다. 개벽학자이자 지구학자이며 미래학자를 지향한다. 개벽학은 동학 창도 이래, 이 땅의 자각적 사상을 현대적으로 계승하겠다는 뜻이다. 동녘의 오래된 유학과 서편의 새로운 서학이 합류한 문명의 융합을 거대한 뿌리로 삼는다. 그러함에도 한국학, 한 나라에 한정되지 않는다. 북구부터 남미까지, 인도양부터 시베리아까지, 지구적 규모로 정보를 수집하고, 지구적 단위로 미래를 사유하는 것이 습관이 되었다. 특히 인간이 창조한 인공의 세계, 인공지구와 인공생명과 인공지능의 도래를 주시한다. 인간 이전의 자연적 진화는 물론이요, 인간 이후의 자율적 진화에, 인간만의 자각적 진화를 두루 아울러야, 지구의 진화에 일조할 수 있는 미래학자의 자격이 갖추어진다고 생각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공진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공진화, 생물과 활물과 인간의 공진화, 생명과 기술과 의식의 공진화, 만인과 만물과 만사의 공진화, 개벽학과 지구학과 미래학의 공진화, 이 모든 것을 아울러 깊은 미래(DEEP FUTURE)를 탐구하는 깊은 사람(Deep Self), 무궁아(無窮我)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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